위장된 허무주의, 명백한 표피성, 함축된 취약함
양효실 (미학, 비평)

전문배우가 아닌 아마추어 배우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주변의 평범한 친구들, 그들의 친구 혹은 가족’을 작가가 연출한 무대로 불러들여 정물이나, 물체 혹은 오브제로 만드는 것은 성지연의 오래된 작업 스타일이다. 자연스러움이나 일상성이 배제되고 인격이나 내면이 배제된 구성이기에 인물들은 네델란드 정물화의 물체들이나 정교한 세팅에 ‘갇힌’ 초상화의 인물들과 인접한다. 마감이 잘된, 윤곽선이 분명한 인물 재현이기에 깔끔하고 선명하게 드러난 인물들 ‘뒤’에 뭔가 감춰졌고, 뭔가 더 읽어야 할 것이 있다는 암시나 반응은 불필요하다. 심적 모호성이 일으키는 정서적 반응은 인물들의 행위가 이면을 함축하지 않기에, 그들의 표정이나 태도가 ‘표피’적이기에, 즉 편평한 이미지로서 존립하기에 이 사진에서는 불필요해진다. 말하자면 인물들은 삼차원의 오브제로 보이지만 이차원의 이미지로서 배치되고 있다.
성지연 사진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다시피 한 “약간은 차가운 회색의 빈 공간”은 모든 인물이 세워지는 토대, 혹은 무대이다. 빛을 흡수하고 공간을 수축적이고 환원적이게 그러므로 정적이게 만드는 회색조의 벽을 배경으로 앉아 있거나 서 있는 인물들은 고독하지 않은 채 고립되어 있다. 맥락, 상황, 서사가 빠진 인물들의 고립으로 인해 전시되는 것, 보이는 것은 그들의 신체성, 혹은 물체성이다. 속이 비워진, 텅 빈 신체는 아마도 작가가 선택해서 인물들에게 입힌 듯 보이는 의복의 단순함, 낮은 명도의 색상에 가려진다. 인물들에게 입혀진 옷은 젠더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지만, 섹슈얼리티가 중요한 핵심이 아닌 구성이기에 그/그녀의 여성적이고 남성적인 특징은 작가가 선호하는바 가시적 명료함을 위한 것이고, 대신에 우리는 젠더 차이와 무관하게 그/그녀의 손, 얼굴, 목과 같은 부분-신체에서 인간임, 생명(체)로서의 인간의 유기체성을 확인하려고 한다. 즉 우리는 아무 것도 감추지 않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인 이 정직한 사진, 속이기와 잘못보기를 위한 드러내기의 내기가 작동하지 않는 사진 앞에서 뭔가 ‘다른’ 것을 읽으려고 한다.
작가는 배우들에게 특정한 상황이나 배역을 연기하도록 요구했기에 그/그녀들은 뜨개질 중이거나, 양 손에 비닐봉지를 들고 있거나, 촛대를 들고 있거나, 탁자 위에 손을 올려 놓거나, 책을 읽고 있거나, 머리 위에 돌을 올려 놓고 있다. 그러나 오해나 왜곡이나 오독의 가능성을 배제한 명명백백한 세팅 속 인물들의 행위는 밋밋한 이미지나 표피로서의 신체와 충돌하고, 그렇기에 어떤 감정이나 내면을 드러내지 못한 채 바깥에서, 기계적으로, 분리된 채 떠있다. 아니 성지연의 인물들은 감정을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그 감정을 과잉으로, 신체가 담을 수 없는 바깥으로 만든다. 아미 그/그녀의 신체가 이미 바깥이기에, 텅 비어 있기에 감정을 담을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오직 얼굴과 손, 혹은 목과 같은 ‘따듯한’ 부분에 그런 요구된 감정의 흔적이 묻어 있고 그래서 이런 불일치나 간극을 우리는 아마츄어 배우의 엉성함, 미숙함 같은 것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평범한 사람들은 작가의 의도, 대본에 충실한, 작가가 조작가능한 인형이나 물건처럼 사용된다. 연출가인 작가는 어떤 연기, 감정을 요구한 것이지만 그것은 홀로, 상황 없이, 차가운 회색 벽 앞에서 일어나고 있기에 안정화되거나 고정되고 ‘자연화’되지 못한다. 성지연의 사진은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들,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갖고 만들어지지만, 그/그녀들은 자신들의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심리로부터, 또 적절한 연기를 위한 견고한 맥락으로부터도 배제되어 있다. 따라서 인물들은 그/그녀들이 들고 있거나 곁에 두고 있는 오브제, 물건을 갖고 행위하는 중심이 아니라 그것과 나란히 병치되고 탈중심화되어 있다. 결국 그/그녀는 텅 빈 비닐 봉지, 아무 것도 쓰여 있지 않은 책, 물고기 없는 어항, 빈 화병이며 고립, 부재, 텅 빔의 이러한 한 화면에서의 두 번의 반복은 성지연의 사진의 반심리적, 반인간적인 구성의 ‘이유’를 묻게 만든다. 숨긴 것도 속이는 것도 왜곡도 오해도 일어날 수 없는 이 명명백백하게 사물화된 인간들, 혹은 인간화된 사물들의 공존 내지 병치 내지 반복은 그러므로 우리가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것인지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불안을 유도한다. 우리는 안, 깊이, 상황이 부재하는 이 장면을 표피적으로, 껍데기로서만 읽는다. 외연(connotation)은 있지만 내포(denotation)는 없는, 기호는 있지만 맥락은 없는 인물 사진은 결국 단순한 봄, 혹은 봄 자체, 혹은 ‘당신이 보는 것이 당신이 보는 것이다’는 프랭크 스텔라 식의 동어반복, 어떤 애매함도 중첩도 흔들림도 없는 자명한 봄, 이면이 없는 표면, 즉 죽음을 가리키게 된다.

사진은 무엇보다 지속으로서의 시간을 순간으로 자르는 기술이고 예술이다. 사진은 유기체의 삶을 단면으로 계속 자르고 그것을 뭔가를 감추고 전달하는 이미지로 만들어내는 속임수이다. 우리가 사진에서 보는 인물은 모두 과거에 속하고 그들의 거기에 있었음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즉 물리적 지속성의 시각적 흔적을 통해 현재로 소환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사진 속 인물의 이미지, 우리가 읽고 반응하고 해석하는 이미지는 관객인 우리의 맥락과 해석을 통해 의미를 내포하고 현재화할 것이지만 사실 사진은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것의 무게, 혹은 실존이 배제되어 있는 껍데기, 낱장일 뿐이다. 사진은 ‘물체’의 표면에 부딪힌 빛이 일으키는 왜곡, 착시에 대한 것이다. 사진은 표면을 건드리고 표면을 가리키고 표면을 증언할 뿐이다. 사진은 텅 빈 삶 혹은 죽음을 ‘보존’한다. 회화는 물감의 지속성, 시간성 덕분에 구상화이건 추상화이건 이미 심리적이고 주관적일 뿐 아니라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삶을 반영한다. 아니 이미 회화는 내면, 상황, 인간을 담고 지지하는 매체이고 기술이다. 사진은 시간성을 순간성이라는 단면으로 자르면서 지속으로서의 삶을 차단하고 깊이로서의 삶에 저항한다. 사진은 죽음, 아무 것도 아님이나 아무 것도 없음을 전달한다. 사진은 명백한(apparent) 봄에 대한 것이다 사진은 시간을 응결시키고 유기체를 비유기체화하고 삶을 죽음으로 전치시킨다. 사진 자체가 맥락, 상황, 지속을 불가능하게 한다. 사진은 응결, 냉동, 고립, 죽음, 부재에 대한 것이다. 사진은 실체 없는 이미지이고 기의 없는 반복으로서의 기표이고 ‘부정적인 것’으로서의 음화, 검음(비가시성)을 기원으로 한 가시성이다. 사진은 시간성을 순간성으로, 삶을 죽음으로, 실체를 이미지로 대체하면서 회화에, 인간에, 존재에 저항한다. 물론 사진의 저항은 미약하고 언제나 회화의 헤게모니에 포섭되면서 진정되어왔고 앞으로도 진정될 것이다. 불멸, 영원, 지속, 깊이와 같은 형이상학적 인간이 욕망하는 가치를 보존, 담지하는 회화와 달리 사진은 단면, 껍데기, 이미지, 표피와 같은 존재의 타자에 충실하다. 존재론의 제국인바 회화의 헤게모니 안에서 사진은 자신의 탈존재론적 지위를 통해 사라지는, 죽어가는, 무의미한 인간의 (탈)가치를 보존한다.

성지연의 사진은 다름아닌 사진의 (탈)존재론에 대한 것이다. 그녀의 사진은 죽음, 부재, 표피에 바쳐진 사진의 근대적 배역을 또 무대에 올리고 그것을 자신의 사진 형식으로 전유한다. 정물화 같은 구성은 회화의 차용이고, 고립된 채 노출된 신체, 즉 내부를 갖지 못한 채로 드러난 신체일 뿐인 인물들은 죽음의 차용이다. 그/그녀들은 순간에 갇혔고 신체에 갇혔고 오브제화되었다. 성지연의 사진은 우리에게서 형이상학적이고 존재론적인 인간의 가치를 빼고 비움으로써 우리를 오직 우리의 신체로, 죽어감이라는 단순한 사실로, 심지어 ‘무가치한’ 물건에 진배없음이라는 허무주의로 인도한다. 이토록 적나라한 사진적인 사실, 오직 사진만이 증언할 수 있었던 사실 덕분에 근대가 제시한 시간성인바 물화된 시간, 죽음이 부재한 시간성의 허위 혹은 실체가 노출될 수 있었다. 가장 근대적 산물인바 사진(기술)은 가장 포스트근대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유한성, 무의미성을 위한 장치가 되었다. 사진은 그 명백한 이미지, 그 명백한 가시성, 그 명백한 순간성을 통해 우리를 (탈)가치화한다.
성지연의 사진은 사진에 대한 것이다. 칸트의 비판 개념을 전유해서 모더니즘 회화를 평면으로 이끌었던 그린버그처럼 성지연은 사진의 한계를 가시화하기 위해 회화의 시간성, 지속성을 반영, 반복하는 사진의 회화에의 의존성을 가시화하면서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사진을 제시한다. 덧없는 순간 이미지, 텅 빈 시간을 위한 형식이자 구조인바 사진을 공들여 연출한 인물사진으로 반복하고 위장하면서, 패로디하면서, 성지연은 계속 죽음, 부재의 편에 서서 인간의 유한성, 취약성을 지지하려 한다. 사진이 순간을 찍으면서 시간을 고립시킨다면 성지연은 연기하는 인물들에게서 인간적인 모든 조건이나 단서를 제거함으로써 인간을 고립시킨다. 고독의 가능성에서도 밀려난 고립이라는 상황은 관객의 정서적 반응을 차단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사진, 밋밋하고 균일한 표면, 반사된 빛의 기록으로서의 평면이다. 그 사실을 성지연의 사진은 우리를 속이면서, 연기하는 배우들과 아무 것도 없는 연기를 갖고 드러낸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고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인간, 속이 텅 빈 인간이 배우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작가가 자신의 무대의 배우로 만든 이 평범한 사람들은 어떤 배역, 어떤 배우가 아니라 배우라는 기호, 관념 자체를 연기하고 있음에 다름 아니다. 그렇기에 이 텅 빈 인간들, 이 텅 빈 배우들, 이 텅 빈 사진은 모두 내포 없는 외연, 내용 없는 형식으로서 존립한다. 표면에서 떠도는, 표면을 흐르는 이 이미지들의 형식주의는 아무 것도 가리키지 않는, 그저 보여짐으로서의 사실에 충실한 이 사진의 정교한 형식주의는 그럼에도 우리를 유혹한다. 죽음이 우리를 유혹하듯이. 아무 것도 없음에도, 아무 것도 보고 있지 않음에도 계속 보려는 욕망이 이미지에의 유혹이라면 성지연의 사진은 정교한 장면연출을 통해 자신의 텅 비어있음을 감추고 위장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계속 보게 만든다.

그런데 그녀의 최근작인 <Drawing Photo(graphy)>는 내 마음을 아주 미묘하게, 살짝 건드린다. 때 묻은 아그리파나 올이 풀린 실 뭉치를 좌대에 올린 채 찍은 사진 두 점, 탁자 위에 천을 씌우고 작은 접시 여러 개를 가장자리에 올려놓은 사진 한 점으로 이루어진 이 과소한 연작은 역설적이지만 인물사진에서 빠졌던 마음이나 고독 같은 것에 대해 뭔가 함축적으로 이야기하려는 것 같다. 좌대 위에 올려진 동그란 실뭉치의 가벼움이나 풀린 올에 함축된바 곧 떨어질 것이라는 암시가, 누군가 천을 낚아채는 순간 저 포개진 그릇들이 우르르 쏟아져 깨질 것이라는 연상이 사진에 지속성과 시간성을 첨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떨어지는 것의 가벼움, 깨지는 것의 연약함이 곧 죽어가는 것의 ‘속성’이라면 이 사진은 죽음이라는 기호, 관념, 추상성을 배우들의 옷 사이로 삐죽 빠져나온 손이나 얼굴의 신체성과 맞물리게 하면서 우리의 죽어감을 유기체의, 살의, 삶의 죽어감으로 되돌리는 것 같다. 그래서 차가운 회색 벽을 배경으로 전개된 이 사진에 대한 비판적 사유가, 가급적 인간으로부터 멀리 외유하면서 결국 인간에 도착하려는 시도일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 막연한 빛, 막연한 희망으로 이 글이 끝나게 된다.